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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수눌다 ]

청년세대가 그리는 ‘공동체’


#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청년세대’와 ‘공동체’라는 단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그 시대를 통과해 온 청년세대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학교에서는 ‘협동하며 함께 잘 사는 법’보다는 ‘경쟁하며 이기는 법’을 가르쳤고, 가정에서는 ‘학교에서 친구와 잘 지냈는지’보다는 ‘시험에서 몇 점을 맞았고, 몇 등을 했는지’를 물었다. 이렇게 ‘함께하는 삶’보다 ‘각자도생의 삶’을 자연스럽게 강요받았던 청년들은 모이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을 위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는지 모른다.

올해 초 제정된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나이를 만 19세부터 34세까지로 정의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가 23년 전인 1997년에 터졌으니 청년 대부분이 IMF 이후의 경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라온 것이다.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원조를 받는 대가로 도입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협력’하는 것보다 ‘경쟁’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를 만들어냈고, 청년들은 이런 사회 속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해 왔다.

학교에서 경쟁을 위한 교육을 받고, 직장으로 새로이 진출하게 되는 이행기 청년들은 심각한 불평등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불안한 노동시장 구조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이 청년세대의 삶의 목표가 되었고, 안정적 직장이라는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동안 청년세대는 개별화되고 파편화되었다.

# 그러나 ‘공동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다시 꺼내든 ‘청년’들이 있다

기성세대는 한국 사회의 동력이 되어야 할 젊은 세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청년세대를 호명하게 된다. ‘88만원 세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수식어로 청년세대를 불러냈던 이들은 청년세대를 일자리를 구해줘야 할 취약계층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청년의 문제는 청년이 주체적으로 해결한다’라는 목소리가 청년세대에게서 나오기 시작했다. ‘청년층의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외치는 당사자 그룹이 형성되고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노동 문제를 다루는 ‘청년유니온’,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다루는 ‘민달팽이유니온’ 등의 청년단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 제주에서도 2015년부터 청년당사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 제주에서는 특히 어려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주체적으로 사는 것’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매우 잘 적용되는 지역이 바로 제주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청년들은 기성의 제주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있는 모난 돌은 가족과 지역사회의 정을 맞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정에 맞지 않기 위해서, 아니 적어도 혼자 외롭게 맞지 않기 위해서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제주에서도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015년 이전 청년들의 이런 움직임의 초기에는 여러 작은 모임들로 시작이 되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모였던 ‘강정을 사랑하는 제주청년들의 모임’, 시사 토론 모임 ‘비몽’,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했던 ‘제주평화나비’ 등의 모임들이 산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제주에서 흩어진 청년들을 만나고, 모아내는 활동을 해왔다

2012년, 청년들과 함께 제주 시사 이슈를 공부하기 위해 만든 시사 토론 모임 ‘비몽’을 시작으로, 제주 청년들의 일상과 고민을 담은 청년 매거진 ‘시노리작’, 그리고 청년성장공동체를 표방한 ‘제주청년협동조합’과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모일 수 있는 커뮤티니 공간인 ‘걸어서4층’을 운영하는 ‘제주알터’까지. 모든 활동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흩어짐’, ‘혼자’를 디폴트(default·기본값이라는 뜻의 신조어) 값으로 설정해 놓은 청년들을 모아내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하기도 했다.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임시총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제주청년협동조합)

# 공동체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청년들을 모아내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이다. ‘함께’보다 ‘혼자’가 편하고, ‘흩어짐’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나를 포함한 청년들은 진득하게 모여있는 것을 쉽게 견디지 못했다. 특히 가치를 기반으로 모인 공동체는 더욱 지속이 어렵다고 느꼈다. 각자 취업 준비를 해야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월급도 나오지 않고, 큰 성과도 나오지 않는 이런 ‘쓸데없는’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체를 운영해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공동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인데, 경험이 많지 않은 청년들에게 이는 어색하고 어려운 과정으로 다가왔다.

# 동아리, 모임에서 법인으로, ‘제주청년협동조합’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법인 설립을 시도했다. 법인을 설립하면 사업을 할 수 있고, 사업을 하면 인건비를 마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2015년 협동조합 형태로 법인을 설립했던 ‘제주청년협동조합’은 2019년 청년 5명을 고용해서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전에는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짬을 내서 청년활동을 해오던 청년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고, 비전을 가지고 있던 활동을 업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건비를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의 4년 동안은 많은 청년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버텨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협동조합이라는 법인 형태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미숙한 점을 연습하고, 훈련하기에 적합했다. 돈을 많이 투자한 주주일수록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식회사와는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운영위원회, 이사회, 총회 등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서 평등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봤을 때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느리고 비효율적이라 비판받기도 하지만 가치 기반 공동체를 운영하는 데에는 주식회사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제주청년협동조합은 50여 명의 청년 조합원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갔다. 청년들을 위한 사업들을 벌여 나가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고민하며 쉽지 않지만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고 있다.

제주청년매거진 시노리작팀의 창간 파티 현장. (사진 제공: 제주청년협동조합)

# 청년들이 실제로 모일 수 있는 공간, ‘걸어서4층’

제주에서 청년들을 만나고 모아 나가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제주도에서 청년 공간인 ‘청년센터’와 ‘청년다락’을 운영하고 있지만 각각의 청년이 따로 이용하는 구조이고, 이들을 공동체로 엮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청년들을 엮는 소프트웨어는 여태 해왔던 청년활동 그 자체이니 이를 실현할 하드웨어 공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8명의 제주 청년이 참여한 공동체인 ‘제주알터’는 공간을 알아보고 2020년 3월에 50평 남짓한 공간을 얻었다.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것부터 함께했다. 함께 페인트칠을 하고, 가구를 옮기며 인테리어를 해 나갔다. 멤버들이 150만 원씩 각출해서 공간을 임대하기로 했기 때문에 예산이 충분치 않았고,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에 공간을 얻게 되었다. 이후 ‘걸어서4층’이라는 이름으로 독서 모임, 영화 모임, 드로잉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고 외부 모임에 공간을 빌려주는 대관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제주알터는 걸어서4층 공간에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이들을 엮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청년들의 공동체, 어떻게 다른가? 

기존의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끈끈한 결속이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끈끈한 결속을 위해서 위계를 나누었고, 강력한 카리스마형 리더가 이들을 통솔했다. 개인은 공동체를 위해 존재했고,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청년들이 그리는 공동체는 이러한 가치들을 거부한다. 강력한 결속보다는 느슨한 연대를 추구한다. 강력한 카리스마형 리더보다는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연결하는 리더를 원하고 때로는 공동의 책임을 가져가는 형태를 시도하기도 한다.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공동체에 우선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는 개인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또한, 청년들은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원한다. 제주에서 필자가 함께했던 모임, 공동체들은 특히 ‘성평등한 공동체’와 ‘나이주의가 없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노력해왔다. 43명의 도의원 중 단 7명만이 여성인 제주도의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주 사회에서 주요 의사 결정은 남성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을 답습하지 않고 개선하기 위해 공동체의 정관을 통해 규칙을 만들고,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에는 ‘나이주의’ 문화도 강하게 남아 있다. 서로 나이를 물어 상하 관계를 설정하고 위계 구조를 만든다. 그러나 공동체를 운영할 때 평등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나이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었고, ‘서로 나이 묻지 않기’, ‘상호 동의 없이 반말하지 않기’ 등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 맺으며

‘청년세대 공동체’라고 하면 80년대 민주화운동 물결에 있던 대학가를 떠올릴 수 있다. 이후 우리나라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했고, 공동체는 개인이 성공하는 데 불리한 가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흩어졌던 청년들이 2010년 이후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청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서울에서 가장 먼 제주까지 흐름이 이어졌다. 청년활동의 핵심은 ‘일단 모이자’였고, 모여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이 시작이었다. 하나둘 모여든 청년들은 우리의 공동체가 기존의 공동체와 어떻게 달라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건도

제주에서 청년들을 만나고 모아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제주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민과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사회적경제, 주민자치, 청년정책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