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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수눌다 ]

코로나 시대,
한계를 가능성으로 바꾸는 예술


사진의 발명 앞에서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는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들라로슈의 심정이 지금처럼 잘 이해되었던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전시와 공연이 멈추자 예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물론 지금은 기우였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등장으로 인상주의가 탄생했듯 현재 예술은 관람객과 관객을 만나기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가고 있다. 무관중 공연, 비대면 공연, 랜선 공연, 랜선 관객 등의 낯선 용어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코로나 이후 예술의 활동이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시도는 현재로 드리운 미래의 희미한 그림자가 아닐까? 미래의 예술을 상상하며 코로나19의 등장 이후 시도되고 있는 예술 활동을 정리해 보았다.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제150회 정기연주회. (사진 제공: 제주시 문화예술과)

# 공연은 멈출 수 없다: 무관중 공연

관객 없는 공연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관객 없이 공연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무관중 공연에도 관객은 있다. 다만 공연장에 관객이 없을 뿐이다. 관객은 공연장이 아닌 집에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이런 낯선 풍경은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고 언제 다시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결국 무관중 공연이란 용어는 관객과 어떠한 방법으로든 만나 공연을 하겠다는 절실함이 담긴 역설적 표현이 되었다.
국내외에서 클래식 음악, 국악,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이 현재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시대 가장 참신한 시도로 기억될 듯하지만, 민간이 운영하는 단체나 극장에서는 무관중 공연을 시도하기 어렵다. 무관중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간단체나 극장에서도 무관중 공연을 시도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 교감을 위한 시도: 랜선 관객, 실시간 채팅

공연장 밖 어딘가에서 관객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예술가는 텅 빈 객석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외롭다고 한다. 보통 예술가는 관객의 반응에 따라 연주하거나, 춤추거나, 연기하기 때문이다. 무관중 공연으로 홀로 된 예술가를 격려하기 위해 랜선 관객이 등장했다. 랜선 관객이란 온라인으로 접속해 예술가 앞 스크린에 비친 관객을 말한다. 관객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스크린을 통해 예술가는 관객의 반응을 직접 느끼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
유튜브 등의 온라인 방송 채널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채팅창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관객이 보내는 글이 공연장으로 전달된다. 때로는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신경이 쓰이는 공연장과는 달리, 편한 복장으로 공연을 보며 감동이나 궁금함을 바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온라인 공연의 매력이다.

# 일상의 공간으로 젖어 든 예술: 원격 연습, 원격 공연, 발코니 공연

온라인에서의 공연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취소된 공연이 더 많다.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연습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여서 연습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화상으로 만나 연습을 하는 원격 연습이 등장했다. 원격 연습은 원격 공연으로 연결된다. 원격 공연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 모여 합창이 되고 합주가 되는 공연이다. 집이라는 일상의 공간이 때로는 연습실, 때로는 공연장이 된다.
온라인에서의 다양한 시도에 비하면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은 미미해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열린 그 어떤 공연보다도 일상의 공간에서 펼쳐진 발코니 공연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감동적이었다. 코로나19로 유럽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봉쇄령으로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 이웃집 발코니에서 연주되는 공연을 듣기 위해 창가로 모이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 장면은 예술의 힘을 새삼 다시 깨닫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활동에 영감을 받아 아파트 발코니나 집 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기획되고 있다.
이처럼 일상의 공간이 예술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몇몇 예술가들이 꿈꾸었던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진 유토피아가 도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 공연=영상 콘텐츠

몇몇 국내외 유명 공연장 등은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사람을 위해 행동에 나섰다. 한정된 시간 동안이지만 지난 공연 영상을 웹사이트나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제공했다. 거리, 시간, 비용 등의 이유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였고, 많은 사람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클래식,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공연을 인터넷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는 현장 공연의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 많은 공연장이 지난 공연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유료로 제공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대 제작부터 촬영과 편집에 이르는 전 과정을 영상 콘텐츠를 고려해서 작업해야 한다. 이것 역시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따라서 소규모 공연도 사람들이 찾아보는 영상 콘텐츠로 제작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현재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 유명 공연장의 영상들은 수준이 높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해 편집한 영상은 여러 각도로 공연을 보여주어, 직접 공연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대신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현장감까지 느끼고 싶다면 큰 화면과 값비싼 음향기기를 마련하면 된다. 결국 경제 능력에 따라 사람마다 같은 공연이라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도 숙제다.

# 시각예술의 고군분투, 가상 전시

공연예술과 비교해 시각예술은 인터넷에서 작품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원작이 갖는 색감은 모니터마다 다르게 보이고, 재료의 거친 질감도 모니터에서는 매끈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시각예술 작품을 보는 행위는 감상이라기보다 정보습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작품을 직접 인터넷에 올리는 공연과는 달리 전시는 학예사 등이 작품을 설명하는 영상물로 제작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실제 전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가상미술관 제작도 활발해졌다. 3D 안경을 끼고 입체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상미술관도 등장했다. 아직은 인터넷 환경에 따라 반응속도가 느리기도 하지만 기술은 계속 발전해 간다. 이러한 발전이 어느 정도까지 현실과 비슷한 경험을 가능하도록 만들지 궁금하다. 다만 문제는 인터넷 공간으로 전시장을 옮겨놓는 일에도 큰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공간의 전시를 가상전시장으로 제작하는 일도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텔레비전의 발명으로도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메일과 핸드폰 문자가 편리하고 빨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손편지를 쓰고 엽서를 보낸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이후 가상공간에서의 예술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겠지만, 그만큼 더 미술관과 극장에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욕망은 커질 것이다. 둘 사이의 긴장이 어떤 예술 지형을 만들어갈지 궁금하다. 예술의 생존을 걱정하기보다 한계를 새로움의 출발로 삼아온 예술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자.


김연주

문화공간 양, 문화기획자.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공간 양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제주도 마을, 공동체, 기억, 역사를 주제로 전시와 학술행사 등을 기획했으며, 거로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예술가와 함께 기록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예술개념을 제안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