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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섬이다 ]

제주는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온 섬이다. 


 얼마 전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제주식탁』이라 이름 붙인 이 책에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먹었던 전통음식들을 만드는 방법과 그 음식들의 가치와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한 짤막한 글들로 채웠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제주의 음식문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제주의 음식, 그 자체를 공부한 것이 아니고 제주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철학과 지혜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제주 음식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단순함 속에는 실로 놀라우리만치 대단한 의미가 담겨 있다.

 가장 일반적인 상차림인 ‘낭푼 밥상’부터 살펴보자. 밥을 담는 그릇, 낭푼!

사전적 의미는 ‘양푼’의 제주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무 푼주’라는 의미이다. 해풍을 맞으며 자라서 염분에 대한 내구성이 좋은 한라산의 가볍고 단단한 나무를 이용해 깎아 만든 그릇으로 나무를 뜻하는 ‘낭’과 푼주의 ‘푼’이 합쳐진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담기는 밥이 뜻하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 음식에서 주식은 쌀로 지은 밥이다. 그래서 ‘밥상’이라 부른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쌀이 귀해서 보리를 주곡으로 삼아 다양한 부재료를 섞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주에서도 주식은 분명 ‘밥’이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주식인 밥만큼은 한 사람 분량의 몫을 확보해 주는 것이 기본 상차림이다. ‘주발’에 밥을 담아 한 사람 분량씩을 상에 차린다. ‘밥의 문화’는 그렇게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고 현재도 그렇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주식인 밥조차 공동의 몫이었다. 한반도의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이런 상차림은 특별한 경우(기아, 피난 등의 상황이나 들일을 하는 등의 야외에서 식사하는 경우 등)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밥을 퍼 놓지 않는다. 

주식을 공동으로 먹는 이 독특한 방식에는 모든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식사 때 누군가 찾아와도 수저 한 벌 가져다 놓으면 함께 앉아 먹을 수 있다. 손님이라고 따로 특별하게 대접하지도 않으며 자신들의 밥상을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내가 남의 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먹을거리는 ‘나누는 것’이란 기본적인 의식이 생활 속에 깔려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그릇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낭푼에 담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큰 그릇은 깎아 썼는데 작은 그릇은 못 깎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 옹기라도 작은 그릇에 담을 수 있었음에도 꼭 낭푼을 고집한 이유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음식에 담긴 공동체 의식은 혼례, 상례 등 행사 때 만들었던 음식에서 더 확연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특히 ‘반’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공동체 의식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나눈다는 의미의 ‘班’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쟁반’을 뜻하는 ‘槃’이라 한다. 그리고 이 반을 나눠주는 행위를 ‘반테운다’ 또는 ‘반ᄂᆞ눈다’라고 표현한다.

궤깃반

잔치를 예로 들면 마을의 ‘도감’이 청년들을 시켜 돼지를 잡고 종일 삶아 수육을 장만하고 수웨(순대)까지 삶은 뒤 그 육수에 모자반을 풀어 넣어 몸국을 끓인다. 또 마른 둠비(두부)를 장만하고 초불 밥을 지어 혼례식 전날 또는 그 전날 가문잔치를 치르면서 손님치레를 시작한다. 대부분 넓적하게 썬 돗궤기(돼지고기) 석 점과 수웨, 둠비 각 한 점씩을 접시에 담아 하객 상에 올려 대접한다. 이를 ‘궤깃반’이라 부르고 한 사람 몫을 의미한다. 평소에 먹던 주식은 한 사람 ‘몫’ 없이 한 그릇에 놓고 먹지만 특별히 장만한 귀한 음식은 오히려 정확히 몫을 구분 지어 놓는 것이다. 더욱이 대담한 것은 이 궤깃반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항상 일정한 분량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도감이 마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한 이유이다. 셈을 잘 못 하는 사람은 도감을 할 수가 없다. 행사에 장만한 음식의 분량과 하객의 수를 예상하여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대접해야 한다. 혼주라고 해서 잔치 음식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따로 용처가 있는 경우 혼주도 도감에게 부탁하여 고기를 받아 가야 했다.

낭푼 밥상 사계절

그러나 ‘반’이 최고의 공동체 의식을 보여준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평등함이다. 반은 엄마 등에 업혀 온 갓난아기에게나 지팡이 짚고 들어서는 어르신에게나 힘 좋은 장정에게나 똑같이 한 접시를 준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차별 없이 한 접시를 받는 것이다. 심지어 현장에 오지 못한 마을 사람이 있으면 싸서 보내어 모처럼 장만한 귀한 음식을 접함에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배려까지 한다. 누구누구 몫을 뜻하는 누구 ‘직시’, 누구 ‘적시’라는 표현은 그래서 제주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말이라 하겠다. 

지구상 어느 곳이라도 음식을 배분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차별’이 존재한다. 가장 우선하는 차별은 신분에 따른 차등 분배다. 족장, 추장 등 무리의 우두머리가 가장 많이 또는 가장 맛있는 부위를 차지하고 점차 아래 계급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성별에 의한 차등 분배도 존재한다. 힘센 남자들이 포획물을 많이 차지하고 여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연령에 의한 차별도 존재한다. 노인과 아이들에게 차등 분배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과연 어떤 집단에서 먹을거리를 공평하게 배분한 적이 있었는지.

제주 사람들은 그것을 지킨 것이다. 귀한 것일수록 더 확실하게, 소외되는 사람 없이 똑같이 나누어 먹기 위해서 노력했고 실천해 왔다. 이것이 제주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이고 음식에 대한 철학이며 기본적인 생활 자세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오히려 생활의 곤궁함 속에서 더 철저하게 지켜져 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풍요로운 현대 사회 속에서 오히려 끼니를 걱정하는 독거노인과 결식아동이 늘고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제주 선인들의 삶의 자세에 대한 고찰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제주는 개발론자들에 의해 공동체 붕괴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다 같이 잘 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의 편중이 심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이후 국민의 경제 생활 수준이 더 나아졌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공동체 붕괴는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오히려 자본가와 공권력에 의한 부와 실적 쌓기는 모두에게 공평한 반을 태우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진: 양용진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제주 토박이로 어머니 김지순 제주향토음식명인의 전수자로서 제주의 전통음식문화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슬로푸드와 로컬푸드 활동가로서 저술, 방송 등에서 바르고 깨끗하고 정의로운 음식문화를 늘 고민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