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 NEXT
[ 삶:  네트워크 ]

우리는 안녕하십니까?
2020 문화예술×성평등 네트워크 in jeju


지난봄, 많은 것들을 이탈시킨 코로나19로 우리는 위로와 응원, 혐오와 단절이 주는 새로운 경험 속에 놓여있다. 여덟 살 아이의 책가방은 첫 등교의 꿈을 접어야 했고 학교에서 돌봄을 받던 열 살 딸아이는 집에서 지체장애 엄마를 돌보는 일상을 견뎌야 했다. 돌봄의 주체가 바뀌거나 일상의 자연스러움은 뒤틀리고 당연했던 것들이 사회 곳곳에서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던 지난여름 18개월 형량의 무게를 가늠해야 하는 사건이 등장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한 남성이 배가 고파서 달걀 18개를 훔치다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18개월을 구형받았다. 같은 시기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역시 같은 18개월을 구형받았다. 한동안 SNS에서는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의 18개월과 일명 코로나 장발장의 18개월을 두고 죄의 무게, 정의의 무게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배고파서 훔친 달걀 18개(5,000원)와 22만여 개의 아동 성 착취물 동영상 유통(44억 원) 사이에는 어떤 정의의 추가 작용하였는가? 우리는 어느 순간 관대한 대한민국을 경험하였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재판부 덕분에 18개월 형량을 받은 그는 4월 만기가 되어 자유의 몸으로 컴백 홈 하였다. 반면 10월 미국 언론은 아동 성 착취물 제작 혐의로 기소된 남성 매슈밀러가 재판에서 징역 600년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18개월과 600년의 차이에서 어떤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 우리나라는 성범죄자에게 다행스러움을, 피해자에게는 죄책감을 주고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어쩌면 관습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는 폭력에 대한 관대함을 외면해오지는 않았는가?

끊임없이 질문의 힘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연대의 밤을 보내었던 여성 예술인들이 2020 A.C.E(Art, Culture, Equality)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갈등이 갈등을 키워가는 어려운 시기에 문화예술계 성평등 네트워크 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집중했다. 모든 일상이 뒤틀리고 예술의 현장성이 거부당하는 시간 속에서 연대를 위한 만남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결국 비대면 속에서 연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식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8월부터 제주 문화예술 현장의 성 인지 감수성 향상과 국내 문화예술계 다양한 주체들의 소통을 통해 건강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문화예술×성평등 네트워크 in jeju를 시작했다. 2020 A.C.E 추진위원회는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우리가 우리를 다양성으로 존중하는 사회. 불평등을 드러내고, 차별 없는 삶에 사유와 공감을 더하는 일상. 그래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평등할 권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며 ‘우리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슬로건 함께 “첫째 우리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예술 활동, 둘째 혐오와 차별 없는 일상을 향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 셋째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안전 사회를 위한 예술연대, 지금 우리가 한다.”는 세 개의 미션을 가지고 문화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 플랫폼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먼저 제주, 전주, 부산, 청주 등 4개 지역에서 문화예술×성평등 아카이브랩이  운영 중이다. 각 지역의 성 인지 감수성의 현재와 현장의 욕구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타임라인 형태의 성 인지 감수성의 흐름을 관찰하거나 키워드로 엮어내는 릴레이 인터뷰, 지역별로 지향하는 목표와 계획들이 인식되고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 씨앗을 뿌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일련의 과정을 아카이빙 하고 공유하며 다양한 주체 간 네트워킹을 통해 인식하고, 발굴하고, 연결하여, 협업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캠페인 ‘성평등 문화씨앗을 배달합니다’ < see:art >의 패키지

첫 프로젝트로 인식 확산을 위한 캠페인 ‘성평등 문화씨앗을 배달합니다’ < see:art > 캠페인은 SNS를 통해 문화예술인 100인에게 선착순으로 참가 신청을 받고 < see:art > 패키지를 배달한다. 성평등 문화 씨앗을 심고 키워내는 과정에서 성평등 디딤돌, 걸림돌 목소리를 함께 담아내며 그 과정들을 공유해 가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성평등 문화틔움 31 오픈 홍보영상

캠페인에 이어 예술인들의 협력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성평등 문화틔움 31에는 성평등 문화 씨앗을 선한 영향력으로 틔워내는 31인(팀)의 예술인들이 함께하고 있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31인(팀)이 성평등 메시지를 담은 1분 영상작품을 전시한다. 10월 31일 홍보영상 오픈을 알리고 11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매일 한 작품씩 유튜브로 만날 수 있다. 11월 20일 오후 3시 TBN 제주교통방송 공개 홀(지하 1층)에서는 문화예술×성평등 포럼 ‘우리는 안녕하십니까?’ 온라인 화상 포럼을 진행한다. 문화예술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관습을 깨는 새로운 시선으로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성평등 문화 비전을 제시하는 네트워크를 위해 ‘1. 우리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예술 활동 2. 혐오와 차별 없는 일상을 향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 3.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안전 사회를 위한 예술연대, 지금 우리가 한다.’를 주제로 진행한다.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진행하며 예술인 정유진, 연미, 박하재홍, 한라일보 진선희 기자,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승택 이사장, 제주특별자치도 이현숙 성평등정책관이 참여한다.


문화예술×성평등 네트워크 in jeju 프로젝트의 마무리 작업인 아카이브 전시 ‘Insight Round’는 12월 5일부터 문화공간 포지션 민에 마련된다. 우리 안의 인식의 변화에 불이 켜지는 순간 안 보이던 주변이 보이고 보이던 것이 달라 보이는 의미의 인사이트(insight)와 자신 안에 인사이트가 켜지면 그 크기만큼 세상이 보이고 네크워킹된다는 공간적 의미의 라운드(round)를 사용한다. 특히 남성 중심의 문화예술 생태계 속에서 수많은 인사이트 라운드를 만들고 있는 사례들을 지역별로 하나의 책상에 모아본다. 독립적이며 내부로 들여다봐야 하는 책상에 앉아 관람객은 각자 자신의 인사이트를 밝히는 관람이자 체험이자 참여의 전시 형태를 지향한다. 전시를 준비한 연미 작가는 수직도 수평도 없는 우주의 공간에서 각자의 빛을 내는 별처럼 지역의 아카이브 존이 있고 그 별마다 방문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느슨한 연대의 희망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상상창고숨(SOOM)에서는 며칠 전 문화예술계 성 인지 감수성 온도를 알아가는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예술가들의 다양한 현장 목소리에 체감온도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격하게 공감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열띤 토론 중 문득 성평등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묻자, 안전하지 못한 사회, 오지 않을 세상, 우리의 미래, 끊임없이 움직이는 추 등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고 공감을 일으키며 씁쓸해한다. 특히 안전한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이야기는 미래 세대에 대한 선배들의 부채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평등 실현은 불가능할 수 있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며 헛된 희망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사유하며 긍정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유와 성찰, 새로운 감각, 느슨한 연대, 삶의 긍정적 태도 등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자주 언급되고 있는 단어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위기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 지속적인 시간의 소중함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한다. 특히 나다움의 시간을 마주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알아채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는 성 인지 감수성의 부재로 불편함을 드러내면 불편을 끼치는 사람이 되거나, 불편함을 불편해하는 악순환의 현실은 대화를 단절시키고 성평등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주기도 한다. 균형을 잡지 못한 채 기울어지고 마는 시소처럼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달려야 하는 오늘을 체감하지만, 어느 날 균형이 맞춰진 시소를 마주할 날을 기대하며 성평등한 삶, 안전한 삶을 위한 방향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안녕하십니까?’


사진 제공: 2020 A.C.E 추진위원회
인스타그램 Url: www.instagram.com/2020aceinjeju


박진희

상상창고soom 대표이다. 탐라미술인협회, 제주여민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80년대 끝물을 먹고 자랐다. 미술모임 ‘우리’ ‘일끼’ ‘청년미술’ ‘숨 조형연구소’에서 예술가들과 밤샘 토론과 작업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였다. 2013년 제주로 자발적 유배를 떠나와 여행자의 삶을 꿈꾸어 보지만 현재는 마을 어디쯤에서 예술로 일상을 넘나드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나답게, 우리답게 사는 삶을 위해 좋은 질문을 만들어 가는 감각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내는 커뮤니티아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