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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

마을, 삶과 죽음의 순환,
그리고 <플라스틱 만다라> 생태예술


# 마을 축제

몇 년 전 마을 축제 준비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마을살이를 시작하고 첫 몇 해에는 마을 축제의 구경꾼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린이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고 마을의 리더들과 이주한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몇 달 전 마을로 이주한 사업가도 이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분의 질문으로 인해 아주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예상 인원이 1000명이라고요? 그 많은 사람이 오면, 도로가 막히고 주차 문제로 난리가 날 텐데, 도로를 막든가 주차를 안내해야 하지 않나요? 그건 누가 하나요?”
이 마을에 산 지 그래도 몇 년 차가 된 우리 이주민들과, 마을 리더들은 그 질문이 이해되지 않아 잠시 갸우뚱갸우뚱하다 이렇게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문제없어요. 다 돼요.”
“그 많은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그걸 어떻게 관리하고, 정리하고, 안내할 건데요?”
“다 돼요.”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은데. 이걸 누가 디렉팅 하고, 누가 지휘를 할 건데요? 전문가를 모셔와야 하지 않아요?”
“다 잘돼요.”
마을 축제 날, 온 마을 사람들과, 마을 밖에 사는 마을 출신 사람들과, 그리고 많은 손님이 마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축제를 북적북적 즐겼다.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하고, 노래자랑을 하고, 춤도 한바탕 추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했으며, 그리고 이 많은 사람이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계획을 꼼꼼히 짜는 걸 본 적 없는데도,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술술 흘렀다. 각자가 맡은, 또는 스스로 맡은 역할을, 소리 없이, 의논 없이 했고, 차가 막힌 적도, 음식이 나오지 않은 적도,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없었다. 서울에서 문화예술 행사를 할 때는 세세한 계획을 짜고, 세부 항목의 담당자를 정하고, 시간별·장소별 순서표를 만드는 등 수많은 통제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평생 함께 살아온 이들이 합을 맞추며 일을 착착 해내는 모습은 놀라웠다.

# 함께, 마을 공동체

제주살이 10년 차인 올해, 처음으로 마을 어르신의 장례식에 갔다. 자주 뵙는 이웃 삼춘의 갑작스러운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는 상복을 입은 가족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여느 마을 행사와 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내를 늘 하시는 총무 삼춘이 안내를 하고 계시고, 늘 수육을 써는 부녀회 삼춘이 수육을 썰다가 살코기 담았다며 많이 먹으라고 한 접시를 더 주셨다. 동네 삼춘들은 잔치 때 먹는 음식과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눈물이나 한탄 없이 근황 토크와 이웃 이야기와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너울너울 술술 했다.
돌아가신 삼춘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이웃 마을에서 배필을 맞이하여 아들딸을 낳고 살다가, 같은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제주도로 이주한 나로서는, 태어난 곳에서 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장례식에 오신 어르신들은 그분이 태어날 때 같이 축하했었을 것이고 결혼식에도, 자녀들이 태어날 때에도 함께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날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함께했다.
마을 공동체에서 삶과 죽음의 전체 순환을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단편적으로 경험하는 ‘함께’라는 말과는 깊이나 넓이가 전혀 다른 ‘함께’의 경험을 본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경험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

# 바다를 향한 축복과 사죄, 플라스틱 만다라

나는 마을에서 어떤 존재로 비추어질까 궁금하곤 하다. 어르신들이 한참 밭에 나가서 일을 할 때, 느지막이 일어난다. 어르신들이 다 잠자리에 들어가시고 밤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하고 풀벌레 소리가 마당에 가득할 때, 본격적인 그림 작업을 하곤 한다. 낮에는 바닷가에 자주 가 있다. 파도를 타고 온 미세 플라스틱을 주워서 생태예술을 하는 것을 올해의 작업으로 하고 있는데, 마음이 힘들어지면서 자꾸 빼먹게 된다.

어차피 이 행위가 바다의 플라스틱을 다 없애지 못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시작했다. 이렇게 줍는다고 해도 티끌만큼 변화를 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매일매일 줍다 보니 점점 미세 플라스틱이 줄어드는 것같이 느껴지면서, 어쩌면 이 해안만은 내가 깨끗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다.
그러다 첫 여름 태풍이 오고, 바다가 토해놓은 플라스틱을 거두어들이며 바다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거둘 수 없으니, 이렇게 파도가 가져다준 것을 거둘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런데 태풍이 또 오고, 또 왔다. 여러 번의 태풍은 너무나 많은 쓰레기를 토해놓았고, 해변의 모래사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쓰레기는 대부분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이다. 100% 인간이 만든 쓰레기이다. 사라지지 않고 쪼개지고 쪼개져서 바다 생명들의 몸속에서 발견되고 결국 우리 몸속으로 들어올 쓰레기이다.
태풍 쓰레기로 뒤덮인 바닷가를 보고 절망하는 나를 보고서야, 내가 희망이란 걸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자, 그냥 바다 앞에 무릎 꿇고 비는 마음으로, 바다의 아픔을 한 줌씩 거두어들이는 행동의 기도를 하자 했었는데, 결과를, 성과를, 뭔가 남는 변화를 소망했나 보다.
태풍 다음 날, 스티로폼으로 덮인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미세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을 분류하고 있었는데, 바다에 놀러 온 많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옆에서 선탠을 하고 있고, 바로 앞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바로 뒤에서 캠핑을 하며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이 쓰레기 더미와 그 위에 있는 나를 볼 수 있을 텐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너무 미워서 눈물이 났다. 그냥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내가 희망을 가진 것에 사람들이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었나보다 싶어 내가 밉기도 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로 승산 스님의 “오직 할 뿐”을 만트라처럼 외우며 바다에 갈 때마다 한 줌의 미세 플라스틱과 한 포대의 스티로폼을 주우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돌고 도는…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는…아무런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어렵다. 태풍 이후에 쓸려온 큰 스티로폼은 수거돼 갔지만, 부서진 조각들은 모래를 파고 채를 쳐야 골라낼 수 있다. 잘 주워지지도 않는 스티로폼을 모으면서 이 일이 점점 무겁고 지친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한 번 희망을 품었던 마음이 절망을 하니 마음 한 켠이 싸하고, 한 번 기대했던 마음이 실망을 하니, 무거운 돌 하나가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또 그런 날, 마을에서 태어나고 마을에서 죽는 삼촌들의 삶의 사이클을 생각해본다. 나도 얼마 후 죽을 것이고, 내가 하는 이 일이나 남기는 말들은 호랑이처럼 가죽도 이름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줍는 미세 플라스틱은 태평양 바다에 섬으로 있다고 하는 해양 쓰레기의 양을 전혀 감소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바다에 나가서 플라스틱 한 줌 만큼 바다를 축복하고, 스티로폼 한 포대만큼 사죄를 한다.

# 순환의 삶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을 좋아하고, 미지의 세상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바다 앞에 무릎을 꿇고 기어 다니며 플라스틱 줍는 이 작업을 일 년째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록달록 너무나 예쁜, 그래서 속상한, 플라스틱 알갱이들을 모은다.
결국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이 작업을 내가 어려워하면서도 하고 있는 것은 내가 마을 속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던 내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 내가,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있는 같은 집에서 10년째, 거의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마을의 어떤 돌고 도는 기운에 휩싸인 듯하다. 태어남과 죽음의 순환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하루와 계절의 순환이 자연스러운 이곳에서 나도 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똑같은 폭낭 아래에서 똑같은 친구와 똑같은 포즈로 앉아계시는 할머니들처럼, 나도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내고 있다.

반복되고 순환적인 삶은 누구에게는 지긋지긋할 것이다. 빠져나가고 싶은데 빠져나가지 못하는 찐득찐득한 무엇일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이것이 삶의 본질과 더 가깝지 않은가. 태어나고, 하루하루 살고 하루하루 죽는다. 그것이 어찌 보면 답답하고 아쉽고 숨 막히지만, 그 안에 또 수많은 뉘앙스와 시적인 순간들과 수많은 웃음이 있다.

매일 가는 바다
매일 가는 숲
매일 만나는 친구
이 모든 것을 마을살이를 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다.
나는 늘 무엇이 되고 싶었던 사람인데, 그 마음이 잠잠해졌고
매일 해도 티가 안 나는 행위를 기도처럼, 염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축복처럼, 하고 있다.


사진: 정은혜

정은혜

생태예술가 겸 미술치료사이다. 캐나다 퀸즈(Queen’s)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 예술 대학(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였다. 시카고의 정신병원과 청소년 치료센터에서 미술치료사로 지내면서 미국공인미술치료사가 되었다. 10년 전부터는 숲이 있는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의 관계 회복을 돕는 미술치료사로, 또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는 작업을 하는 생태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