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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섬이다 ]

제주는 ‘나눔’의 섬이다
제주신화가 건네는 삶의 방식, 나누기


# 지속적으로 사는 법, 나누기 

제주는 화산섬이다. 화산쇄설물들은 경작지를 잘게 나누었다. 토양 또한 대부분 함수율이 낮은 화산회토다. 가족들은 분산된 경지와 밭농사 체제에 맞춰 핵가족의 형태로 따로따로 살았다. 쌀은 커녕 보리 경작도 어려워 기장이나 메밀, 피를 경작하며 살아가야 했다.

제주올레 1코스에서 만난 조각조각 난 밭(2019.07.05.). 좁은 경작지는 소규모 생산과 핵가족의 체계를 만들었다. 
가족들은 경작지를 찾아 흩어져 살아갔다. 한 마을에서도 나눠 살고, 한 마당에서도 나눠 ‘질로지만씩’ 산다.

물 막은 섬에, 쓰고 먹을 게 모자라니 나누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눠 살고, 나눠 먹고, 잘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제주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방편이었고, 그렇게 제주문화, 제주신화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제주신화에는 이 ‘나누기’ 코드가 종종 등장한다. 삼승신화에서는 패배한 여신에게도 삼승의 중요한 기능을 나눠준다. 천지왕신화에도 대별왕, 소별왕은 이승과 저승의 공간을 나누어 차지한다. 강림은 할망, 하르방, 약자들을 존중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성공적인 길로 들어선다. 삼천 년 이상 산 사만이는 옷 달라 밥 달라는 거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자청비는 지극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마저 남과 나눈다. 그중 백주또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한다.


# 백주또의 철학, 나누기 

제주신화의 뿌리라 얘기되는 송당신화는 송당마을의 신화이며, 백주또 여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백주또는 아들 18, 딸 28을 낳는다. 손자 방상 다 합치면 378이나 되었다고 한다. 백주또는 아이들이 크자, “자, 이제 각자 살 자리를 찾아 좌정하고 살아가라.”라고 말한다. 그녀의 아들 18, 딸 28은 모두 제주의 전역으로 퍼져나가 마을을 세우고 마을의 신이 된다.

백주또는 세상의 많은 다른 신들이라면 모두를 자신의 휘하에 거느리고 집중시켰을 권력을 스스럼없이 나눈다. 이 과정에서 아들과 딸은 차별되지 않는다. 아들도, 딸도, 어려도 마을을 대표하는 신이 된다. 여성차별, 장자상속, 장유유서의 지배 논리는 없다.
여기서 백주또의 창의적인, 새로운 배치를 만날 수 있다. 축적, 정착의 상징인 백주또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부장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점을 진일보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그건 ‘나누기’다.


# 나눠 살기

백주또가 “네가 살 곳으로 가서 좌정하고 살아가라.”라고 말했듯, 제주의 아들딸들은 조각난 토지를 찾아 각각 ‘질로지만씩’ 살았다.
“질로지만씩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지금도 제주에서 수없이 얘기된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각각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들딸은 그들대로, 모두 각각 살라는 거다.

이는 남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척박한 땅, 물 막은 섬에는 훔쳐 갈 것도 없고 줄 것도 없었다. 잉여분이 없는 곳에서 남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삶까지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나이 든 노인들도 모두 부지런히 일하며 질로지만씩 살아갔다. 어려도 그리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부여된 삼종지도의 규범과는 달리, 어려서 아버지에게, 젊어서 남편에게, 늙어서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 제주의 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따로 또 같이’ 살기

질로지만씩의 핵심은 각자 살아간다, 자립한다는 것이지만 공동체 모두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각 질로지만씩 부지런히 살아가다 진압이나 제초, 수확 등 협업이 필요할 때면, 마을 사람들과 수눌면서 재빨리 농사일을 처리해야 했다. 자식, 형제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질로지만씩 살아가고 있었으므로 제때에 그들을 동원하는 것은 힘들었다.
개체의 자립이 꼭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던 거다. 이런 과정에서 제주는 질로지만씩 살아가면서도 공동체를 신뢰하고 따르는, ‘따로 또 같이’의 거버넌스를 구체화한다.
백주또는 남의 집 소를 잡아먹은 남편에게 “소를 잡아먹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지만 남의 소를 잡아먹는 것은 소도둑놈 말도둑놈 아닙니까? 살림분산 합시다.”라고 말한다. 자기 집 소를 잡아먹은 것은 예사로 있을 수 있지만, 남의 집 소를 잡아먹는 것은 아무리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지만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공동체의 신뢰를 깨버린 남편으로 인해 가족 모두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팎거리’는 자기 자신의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 공동체와, ‘따로 또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티프다.
가난한 데다 고온다습하고 바람이 강한 제주도의 조건은 가옥의 규모를 적게 하도록 했다. 강한 바람에 지붕이 날아갈까, 너무 습해 집 전체가 눅눅해질까, 작은 집들을 한 마당 안에 여러 채 지었던 것이다. 안에 있어 안거리, 밖에 있어 밖거리, 모퉁이에 있어 모커리다.

부모와 자식 간, 두 세대는 한 마당 안에, ‘따로 또 같이’ 산다. 밥도 따로 해 먹고, 고팡(창고)의 열쇠도 각자이다.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와 기지개를 켜면서 눈치껏 부모님의 상황을 살핀다. 노인이 된 부모들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밭을 택하여 직접 관리하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밭에 나가 직접 생산에 참여한다. 

한 마당에 같이 살면서도, 따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생활 패턴에서 부모들은 권위적인 질서를 내세우거나 늘 봉양 받는 것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노인들만 따로 살아갈 경우 가지게 되는 경제적인 불안, 심리적인 외로움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젊은 자녀들 역시 자식의 도리라는 지나친 압박감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다. 고부간 갈등도 줄일 수 있었다.


# 나눠 먹기

제주는 나눠 살기에도 일가견을 보이는 곳이지만, 나눠 먹기에도 일가견을 보이는 곳이다.

제주에는 “아방하고 아들 간 떡도 그믓 그성 먹으라.”라는 속담이 있다.
떡이 한 조각 있다는 건데, 그걸 이건 아버지 것, 이건 아들 것, 선(그믓)을 그어 먹으라는 것이다. 이런 속담은 효 이데올로기, 장유유서의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속담이 어른들을 공경하지 말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 막은 섬이어서 배도 오가지 못하고, 흉년에 먹을 것이 모자라면 어쩔 건가. 누군가는 죽어 나가야 하는데, 그건 공동체의 피폐요 멸망이니, 나누는 거다. 약자들을 위한 방편이었다. 각각, 같이 오래도록 살아가기 위해 형성된 나눔의 거버넌스다.

제사 집에 가면 제사 떡도 나눈다.
제사 집에 열 명의 참석자가 있으면 접시를 열 개 꺼낸다. 열 개의 접시에 옥돔도 10등분, 사과도 10등분해 하나씩, 맛있는 송편도, 기름떡도 하나씩 고루 나눠 놓는다. 그리고 제사 참석자 모두에게 이 접시를 하나씩 돌린다. 9살 여자아이도, 16살 아들 그 집 종손도, 큰어른이신 할아버지도 한 접시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는 제사 때나 쌀밥을 했다. 이 하얀 쌀밥을 곤밥(고운 밥, 예쁜 밥?)이라 불렀다. 이 곤밥도 한 숟갈씩 열 개의 밥그릇에 나눈다.
내 할아버지는 제주신화의 한 장면처럼, 자신은 다 늙어서 조금만 먹어도 된다며, 할아버지 몫의 곤밥을 내게 주셨다. 장손인 큰오빠에게가 아니라, 손녀딸인 내게.


# 골로로 족족’, 나누기

‘골로로 족족’이라는 말도 제주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이는 ‘나누기’에 사용되는 잣대다. 골고루(골로로) 나누기 위해서는 족족, 조금씩 나누라는 뜻이다. 나누기는 차별과 소외를 지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 오래된 미래, 백주또가 건네는 말

개체의 역량을 키우고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잘 살아가는 것은 개체와 공동체 간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이 핵심을 좇기가 무척 어렵고도 중요해진 지금, 백주또가 건네는 말은 신화 속의 그녀처럼 무뚝뚝하고, 간단하다. 질로지만씩 기대지 않고, 같이 살라는 것이다. 골로로 족족, 나누며 살라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개체성의 자립을 확보해주는 과정에서 진정 강건해진다는 것이다.


사진: 김정숙

김정숙

제주신화 연구가이다. 제주 태생으로 30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현재 설문대 여성문화센터, JDC, 병무청 등에서 제주신화와 문화 관련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자청비·가믄장아기·백주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