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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섬이다 ]

제주도에 안성맞춤 - 갈옷


제주도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아왔을까?
제주도만의 독특한 의생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에는 남아 있는 자료와 기록이 미미한 상태라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갈옷은 오랫동안 제주도 사람들이 입어왔고 지금도 입고 있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의생활 중 하나로 제주도 사람들의 노동복이자 일상복으로 벗어 볼 날이 없었던 옷이다.

제주도 속담에 ‘손발이 간세호민 입도 간세혼다.’라는 말이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살 수 있다는 말인데 어르신들을 만나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여쭙게 되면 대부분 부지런한 공으로 입에 풀칠했다고 한다.이처럼 예전에 제주도는 식량을 얻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자연환경은 바람이 많고 여름에는 긴 장마로 모든 물건이 상하기 쉬우며, 강우량은 많으나 물이 고이지 않아 비가 그침과 동시에 하천은 건천이 되어버린다. 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암반으로 이루어져 흙 깊이가 얕아서 수분이 금방 증발하여 가뭄 들기가 쉬워 늘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항상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했고 물자는 아껴 쓰고 비축하는 삶이라야 했다. 더욱이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고립된 섬이라서 필요한 물자는 자급자족해야만 했으므로 더 어려웠다.

감물 들인 옷과 천을 말리는 풍경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이 확보되지 않은 생활에서 옷감 원료를 재배하기는 더 어려웠으므로 의생활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속담에 ‘밥 줄 인 셔도 옷 줄 인 엇나(밥 줄 사람은 있어도 옷을 줄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세끼 먹고 살기 힘들어도 한 숟갈씩 밥은 나눠 먹을 수 있으나 옷은 나누어 줄 여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로 할머니들을 만나 조사하다 보면 감물을 들여 풍체(채양)에 널었는데 마을에 한두 집은 감물 들인 옷이 두 벌 널려 있는 것을 목격했노라고 하시면서 감물을 두 벌이나 들일 여유의 옷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었다고 한다. 옷감이 여유가 없으니 옷을 만들 때에는 한 올이라도 허투루 낭비함이 없어야 했다.

ᄇᆞ름구덕

또 어른 옷이 헐어서 못 입게 되면 성한 곳을 오려내어 아이들의 옷을 만들거나 그마저 안 되는 곳은 오려두었다가 아기 기저귀나 걸레로 사용하였고 더 작은 부분은 ᄇᆞ름구덕(풀바른 바구니: 구덕이 헐어서 못 쓰게 된 것을 헝겊이나 종이를 발라서 다시 사용)에 사용했으므로 실오라기 하나도 수명이 다하도록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옷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노동복과 외출복은 엄연히 구분하여 입었다. 갈옷을 노동복 외에 외의(外衣)로 입지 않고 또 갈옷 위에 두루마기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제주도』, 이즈미 세이치 지음, 김종철 옮김) 지금도 할머니들은 갈옷을 입고 밖에 나다니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분도 계시는데 이런 연유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갈중이적삼 입엇젠 못홀 일 엇나(갈옷 입었다고 못 할 일 없다).’라는 말도 있다. 비록 갈옷을 입고 있지만 무슨 일을 하는 데 결함이 될 수 없다는 당당함을 느낄 수 있는 속담이다. 또 아기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갈중이로 몸을 감싸 두고 사흘이 지나 목욕을 한 다음 봇뒤창옷(배냇저고리)을 입혔다고 할머니들은 말씀하신다.

이처럼 제주도 사람들은 태어나서 제일 먼저 접했던 옷이 갈옷이었고 또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입었던 옷이 바로 갈옷이었다.

갈옷 염색의 재료인 풋감

갈옷이라는 명칭은 감물을 들인 옷 또는 갈색을 띠는 옷이라는 의미에서 갈옷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갈옷은 떫은 토종 풋감의 즙으로 물을 들여서 노동복 또는 일상복으로 입었던 옷이다. 감물 들이기는 칠월 칠석을 전후해서 들였는데 요즘은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감은 즙이 많은 시기에 새벽에 따서 바로 도구리(함지박)에 넣어 빻고 옷을 넣어 치대면서 옷감 속으로 즙이 스며들도록 한다. 그러고 난 다음 옷을 탁탁 털어 찌꺼기를 잘 털어내고 지붕 위나 풍체에 널어 두면 햇볕과 바람과 이슬에 의해 점차 갈색을 내는데 앞뒤를 바꿔주어야 색이 고르게 난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는 보자기에 싸서 상방(마루)을 닦았다. 마루가 광택도 나지만 긴 장마로 인해 썩는 것이 방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갈옷을 언제부터 입기 시작하였을까? 정확한 단서는 찾을 수가 없다. 진성기의 『남국의 민속』에서 “갈옷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여 입었는지 기록이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은 몽골의 풍속이라고 하지만 근거가 애매하다. 지금부터 약 700여 년 전 한 고기잡이 할아버지가 낚싯줄이 자주 끊어짐을 민망히 여겨 감물을 염색한 결과 질기고 고기도 더 잘 잡혔다는 전설이 있다.”라고 한 기록이 있는데 이 내용에 대한 가능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감물을 들이면 옷감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또 어떤 이유에서 옷에 감물을 들여 입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경험적으로 입어보니 좋았으므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갈옷은 입으면 통기성이 좋고 풀을 먹인 새 옷을 입은 것처럼 촉감도 좋고 시원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땀이 나거나 물에 젖어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또 빨리 건조되어서 불편함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가시덤불에 잘 걸리지 않고 걸려도 잘 찢어지지 않는다. 감물을 들이면 빳빳하게 풀 먹인 옷처럼 되기도 하지만 강도가 강해져 질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을 입다가 헐어서 후줄근해지면 감물을 들여 입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주도의 주식인 보리를 탈곡할 때 까끄라기 같은 오물도 쉽게 달라붙지 않고 만약 붙었다가도 털면 잘 떨어지므로 제주도의 노동복으로 최고의 조건이 구비된 셈이다. 또 갈옷은 땀에 갈변해서 빛깔이 제주 흙 색깔과 비슷하여 더러워져도 쉽게 눈에 띄지 않고, 감즙으로 옷감에 코팅이 되어 있어 더러움도 덜 타고 더러워진 것도 물에 주물럭거려 활활 헹궈 탁 털어 말리면 그만이니 물이 귀한 제주도에 참으로 편리하고 경제적인 옷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땀에 젖은 옷을 그냥 두어도 쉽게 썩거나 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데 이는 화학 염료로 염색한 옷보다 항균성이 무척 뛰어나서 땀이 묻어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또 자외선 차단 효과가 완벽에 가깝다.

이러한 우수성으로 갈옷은 근래 환경과 건강 차원에서 새롭게 평가받으며 노동복의 한계를 넘어 소중한 자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귀한 문화유산인 갈옷, 이제 우리가 더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현진숙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